가속 노화, 간헐적 단식, 그리고 초기 (pre-PMF) 스타트업에 맞지 않는 방법론들
간헐적 단식과 2만보 걷기를 하며 골병 드는 노인들
'가속 노화'라는 키워드로 열심히 저술, 강연 활동을 하는 아산병원 노년내과 정희원 교수가 얼마 전 유튜브 닥터프렌즈 채널에 나와서 이런 아쉬움을 토로했습니다. (영상 제목: 노년내과 교수가 말하는 연령 별 노화를 늦추는 방법 | 느리게 나이 드는 습관)
긴 얘기를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 미디어에서는 '가속노화를 막으려면 단순당을 피하고 잡곡밥을 먹어야 한다. 간헐적 단식을 해야 한다' 같은 이야기들이 부각된다. 그러다 보니 이게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다고 오해하는 분들이 많다.
- 하지만 이 얘기는 대사과잉으로 살이 찔 위험이 있는 사람들(30대 중반 이후~중년기)에게 적합한 말이다.
- 노년기, 혹은 중년기라고 하더라도 체질량 지수가 낮고 근감소가 있는 분들에게는 적합하지 않다. 이런 분들께는 오히려 흰쌀밥, 삼겹살, 흰빵에 누텔라를 발라서 드시라고 말씀드린다.
- 이런 분들이 유튜브를 보고 얻은 정보를 토대로 잡곡밥 먹고, 소식 하고, 간헐적 단식을 하고 2만 보 걷기를 한다. 노년기에는 식사량을 줄이고 유산소운동을 무리해서 하면 근감소, 쇠약감 등이 심해질 수 있어서 오히려 독이 된다.
- 중요한 것은 여러 가지 정보를 포트폴리오로 만들어서 본인의 상황에 맞게 실천하는 것이다.
맞지 않는 방법론을 가져다 쓰는 초기(pre-PMF) 스타트업들
이런 상황은 스타트업에서도 빈번하게 보입니다. 어떤 방법론이 인기가 있으면 너나 할 것 없이 그 방법론을 가져다 쓰려고 하는 거죠.
대표적으로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 전통의 강호 OKR
- 신흥 명문 Carrying Capacity
- 쇠락하고 있지만 아직 죽지 않은 그로스 해킹
- 사실은 굉장히 어려운데 얼핏 보면 쉬워 보이는 A/B 테스트
- (특정한 방식의) 가설 수립과 실험 등등...
여러 방법론이 갖고 있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잘 된 회사'에서 탄생했거나, '잘 된 회사'에서 쓰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많은 사람이 열광하겠죠. (구글이 OKR을 했으니 우리도 하자! 우리도 토스처럼 Carrying Capacity를 계산하자!) 애초에 '잘 된 회사'에서 탄생했기 때문에 알려지는 것이기도 하구요.
비판적으로 따져보기
하지만 구글과 토스에 대한 존경심은 잠깐 접어 두고, 비판적으로 따져 봐야 합니다. 특히 초기(pre-PMF, 혹은 작은 규모의) 스타트업이라면 더더욱 그래야 합니다. '잘 된 회사'와 우리 회사는 너무나 다르니까요.
그 방법론은 어떤 맥락에서 탄생했나?
하늘에서 절대자가 내려 주는 방법론은 없습니다. 특정한 단계의 특정한 회사에서, 특정한 상황에서 특정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궁리해서 만든 것이 방법론입니다. 이걸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그 방법론은 어떤 조건과 환경이기에 잘 작동했나?
방법론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특정한 조건과 환경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OKR이 잘 작동하려면 이런 것들이 필요합니다.
- 3개월 단위로 예측이 가능할 정도로 궤도에 올라온 사업
- 목표 달성 방법을 각 팀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역량
- 팀이 그런 역량을 갖고 있을 거라는 신뢰
- 팀이 자율적으로 결정해서 실행할 수 있는 의사결정 구조 같은 것들.
우리 회사도 그런 맥락과 조건을 갖고 있나?
- 우리 회사는 3개월 단위로 예측이 가능할 정도로 사업이 궤도에 올라왔나?
- 아니면 당장 내일 고객 인터뷰 결과에 따라서 제품 방향성이 크게 달라질 수도 있는 상황인가?
- 각 팀이 자율적으로 목표 달성 방법을 정해서 실행할 수 있도록 임파워먼트(empowerment)하는 문화와 의사결정 구조가 있나?
- 아니면 대표인 내가 각 팀의 의사결정에 깊숙이 관여해야 하나?
- 제주 귤나무를 함경북도에 심으면 귤이 잘 열릴까?
그 방법론이 우리 회사에 중요하긴 한가?
- 우리 회사가 극복해야 하는 도전 과제는 무엇인가?
- 그 방법론이 우리의 도전 과제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나?
- 아니면 진짜 중요한 문제에서 회피하는 distraction이 될 뿐인가?
OKR을 열심히 수립하고, 주니어 데이터 분석가를 들들 볶아서 Carrying Capacity, Lifetime Value 같은 걸 계산하고 있으면 뭔가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러면 진짜 중요한 문제를 마음 편히 회피할 수 있게 되죠.
시장에 우리 제품을 원하는 사람들이 없다는 문제, 회사에 진짜 전략이 없다는 문제, 팀 안에 여러 문제가 '방 안의 코끼리'들처럼 있지만, 아무도 껄끄러운 얘기를 꺼내지 못하는 문제 등등...
내가 진짜 중요한 문제를 똑바로 마주보고 있는지, 아니면 일단 분주하게 남들이 하는 것을 따라하면서 불안을 해소하고 있을 뿐인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비판적 사고가 어렵다면
비판적으로 따져보기 어려운 분들께는 이런 어림법칙을 추천합니다.
- '이미 잘 된' 회사에서 쓰는 방법론은 이제 막 시작하는 초기(pre-PMF) 스타트업에는 대부분 맞지 않다.
- 초기 스타트업은 상식적인 것부터 챙겨야 한다. (시장에 정말 그 문제가 존재하나? 그 문제는 사람들이 시간과 돈을 쓸 정도로 중요한 문제인가? 충분히 많은 사람이 그 문제를 가지고 있나? 우리 제품이 고객의 문제를 제대로 해결해 주나? 등등...)
- 멋있어 보이는 용어로 포장된 것, 권위(잘나가는 회사와 사람)를 입고 있는 것을 보면 특히 가드를 올리고 의심해보자.
결국 중요한 것
결국 중요한 것은 방법론(템플릿화된)이 아니라, 그 도구를 가져다 쓰는 사람입니다. 화려하고 있어 보이는 것에 휩쓸리지 않고, 내가 어떤 도전 과제를 극복해야 하는지 알고, 이를 위해 어디에 집중할지 정하고, 언제 어떤 도구를 사용하면 되는지 이해하는 것.
이런 기본이 지극히 어렵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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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덕트 조직, 혹은 개인(제품 리더, PM, PO 등)을 대상으로 한 코칭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아래 이야기들이 내 얘기로 느껴지는 분들께 도움을 드립니다. 자세한 내용은 링크된 페이지를 참고해주세요.
- 제품에서 해야 할 일들은 쏟아지는데, 어떤 기준으로 우선순위를 설정하면 좋을지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명확한 방향성이 없이 그때 그때 급한 일을 쳐내는 식으로 일하고 있다.
- 지표를 개선해야 하는데, 어떤 식으로 접근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떤 지표를 봐야 좋을지 모르겠다.
- 조직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데, 하나를 택하면 포기해야 하는 것도 명확해서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리더로서 자신감이 떨어진다.
- 제품 조직과 다른 부서 간 의견 차이와 갈등이 있다. 다른 조직의 입김 때문에 제품 조직이 꼭 필요한 일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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